자연사랑은 어린이들 희망입니다.
가을비라도 내릴 모양인지,
하늘은 잔뜩 흐려 별 하나 보이질 않았다.
휙-휙-휘익--
밤 깊은 야심한 시각, 흰 물체가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은 산속을 누비고 있었다. 한 마리 백호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는 물체는 계곡을 가로질러 내 달렸고 능선을 타 넘었다. 한 번의 동작으로 10미터씩 날아갈 땐, 긴 백영(白影)만이 시야에 들어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인영(人影)은 백영을 길게 남기며 가파른 능선을 계속 올라갔다. 다소 숨소리가 거칠긴 했어도 산 정상으로 오르는 속도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정상에 다다를수록 그 빠르기가 가속도가 붙듯 더 빨라졌다.
휘리릭- 휙휙--
대략 3분,
인영이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으로 풀풀 날아올랐다.
“휴- 이제야 경공을 펼치는 데 무리가 없다. 벌써 일주일, 오늘은 한번 날아서 넘어봐!”
인영은 암봉이 건너다보이는 바위로 올라서선 중얼거렸다.
민혁은 오늘로 일주일째,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쉬는 시간도 없이 경공술을 수련했다. 그렇게 지옥훈련을 받듯 밤마다 치러진 수련은 갈무리되었던 내공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공력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수련한 무공들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도 되었다.
어둠 속에 우뚝 솟은 암봉이 건너다 보였다. 거리는 대략 30미터, 민혁은 지금 암봉으로 건너뛸 생각인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뿐하게 날아 건넜으니, 민혁도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니, 두려운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난 건널 수 있다.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도 건넜다. 그런데 혼자서도 건너지 못한다면, 말도 안 된다. 난, 건널 수 있다. 휴우-후, 후,”
민혁은 작심하고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해댄 민혁이 힘차게 바위를 박찼다.
아니, 이럴 수가...?
백의를 너풀거리며 날아오른 민혁의 몸은 45도를 유지한 채 암봉으로 날아갔다.
이는 판타지나 무협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어둠 속을 가르는 백영, 낮이거나 달밤이었다면 이 광경이 더 아름답고 경이로웠을 것이었다.
스스슥, 착-
민혁은 너무도 유연하게 건너편 암봉에 내려섰다.
“야우! 할아버지, 믿어지진 않지만 저도 할아버지처럼 날아 건넜습니다. 분명 꿈속은 아닙니다. 우아···”
민혁의 입에서 환희의 외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암동은 변함없이 낮처럼 밝았다.
암동에 들어온 민혁은 감회가 새로워 한참동안 암동의 전경을 둘러봤다.
오늘따라 암동의 전경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이젠 집이나 마찬가지인 암동,
자신에겐 특별한 의미의 암동이 더없이 아늑하고 좋게만 생각되는 민혁이었다.
민혁은 천천히 호수를 따라 걸었다. 잔잔히 깔린 물안개가 짓궂게 휘두른 손짓에 따라 너울너울 춤을 췄다. 민혁에겐 안개뿐만 아니라 과실수와 열매들 하물며 조약돌과 야명주까지 정겹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민혁의 친구요, 심심할 때 대화를 나누는 말동무들이었던 것이다.
암동을 한 바퀴 돈 민혁은 유유히 다리를 건넜다.
그리곤 돌기둥 앞에 옷을 벗어놓고는 가뿐하게 위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불순한 무리들, 드러나지 않은 실체들, 그리고 날마다 벌어지는 강력사건들, 그런 사건들이 겉으로 드러난다면, 아니, 사전에 알 수만 있다면, 치안 유지에 큰 도움이 되겠지...”
민혁의 입가에 쓴 미소가 어렸다.
“제기랄, 법망을 피해 저질러지는 사건들과 미해결 사건들은 정말이지, 경찰로서도 어쩌지 못할 거야, 그래,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선 내가 나서야 한다. 내가...”
민혁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깊은 명상에 잠겼다.
민혁이 명상에 잠긴 그 시각이었다.
사직동 럭키아파트 5동 1017호, 붉은 조명 아래 거실의 정경이 드러났다. 넓은 거실엔 소파와 고급 장식장,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받침대 위엔 고려청자로 보이는 도자기 몇 점이 놓여있었다. 그 외에도 진열된 물건들은 고급스러워 보였고, 벽걸이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따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별안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붉은색 조명아래 드러난 침실엔 중년부부가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고 여인이 부스스 일어나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여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고 있는 사나이를 흔들어 댔다.
“이 새벽에, 여보! 여보! 전화 받아 봐요.”
“왜 그래, 피곤...”
“전화 좀, 받아 보라니까요.”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은 귀가 따갑도록 계속 울렸다.
“이거, 방에다 연결을 시키든지 해야지, 미애는 들어 왔나?”
사나이는 마지못해 일어나며 눈을 비벼댔다.
“이틀 동안 봉사활동 갔잖아요.”
“그럼, 미애가, 새벽에 전화할 리는 없고, 누구지...?”
사나이는 중얼거리며 거실로 나갔다.
“여보세요?”
사나이는 수화기를 집어 들곤 상대의 동정을 살폈다.
“꼭두새벽에 전화라니, 여보세요? 장난치나...”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닌데 상대방에선 응답이 없었다.
사나이가 짜증스럽다는 투로 말하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굵직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당신이 김성원이요?’
“누 누구요?”
‘얘기만 들으시오. 당신 딸인 미애는 잘 보살피고 있소이다.’
“뭐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 딸을 우리가 데리고 있단 말이오. 당신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당신 딸이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될 것이오. 다시 전화할 때까지 허튼 수작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조용히 지내시오.’
찰카닥-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사나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전화를 받다가 놀란 나머지 철버덕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남편의 목소릴 듣고 뛰쳐나온 부인이 기겁하여 남편을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세상에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사나이는 정신이 아뜩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스런 딸의 웃는 얼굴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뜩이나 납치, 강간, 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는 때라 사나이는 딸이 죽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고 겁나고 두려웠다.
"......."
***
다음날 오전 10시경, 검찰청 회의실을 빠져나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영란 검사와 권철권, 이정수 수사관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40대 사나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영란과 속삭이듯 얘기를 나누며 나왔다. 앞서 나온 권철권과 이정수는 우거지상으로 계속 툴툴거리고 있었다.
“선배님,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게 말일세! 뭔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지...”
“검사님이 잘되면 자신에게도 좋은 일 아닙니까, 부하가 잘되는데 길을 막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부장이 욕심이 많긴 많지, 먼저 보고를 했어야 했는데...”
두 사람이 툴툴거리는 걸 보면 안에서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 검사! 정말이지, 부장님이 이러시면 안 되지,”
“과장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부장님 말씀처럼 공을 내세우려고 밤잠을 설친 건 아니잖아요. 놈들을 잡게 된 것은 다 그 청년 때문이었어요. 상을 받아야 한다면 그 청년이 받아야지요.”
“그 청년은 찾지를 못했다고...?”
“연락을 준다고 해놓곤 감감무소식이네요.”
“아무튼 대단한 청년이었던 모양이야,”
“저도 놀랐으니까요.”
오늘 회의는 부장검사인 염균호 주재로 열린 회의였다. 자칫 미해결 사건으로 종결될 번한 살인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한 공로로 담당검사가 상을 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민의 활약으로 범인들을 잡았다하여 염균호 손에서 취소되었다. 단지 금일봉과 3일간 휴가를 받는 것으로 포상에 대한 것은 일단락되었다.
영란은 그 날 이후, 청년의 영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늠름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청년의 비호처럼 빠른 동작은 지금도 의혹으로 남았다. 어떻게 해서든 청년을 다시 만나고 싶었고, 전화가 울리면 혹시나 그 청년인가 반갑게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청년에게선 감감무소식이었다.
“정 검사! 그리고 두 사람, 휴가 잘들 보내시게...”
“잠이나 실컷 자야겠어요.”
영란은 언짢긴 했지만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장님! 정말 더러워서...”
“권 수사관! 어쩌겠나, 참으시게...”
“쫄다구가 별수 있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과장님!”
“이 사람, 그만 가자고...”
권철권은 기분이 많이 상했던지 과장에게 따지듯이 나섰다.
이를 보다 못한 이정수가 잡아끌고 사무실로 향했다.
“두 분! 너무 언짢아 마세요. 그리고 이거 금일봉인데, 두 분이 나눠서 사용하세요. 저는 내일 잠이나 푹 자야겠어요.”
“검사님! 이러시면 섭섭하지요. 그냥 회식이나 하십시다.”
“이 수사관님 다른 분들에겐 제가 한턱내겠습니다. 이 금일봉은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라고 두 분에게 휴가비로 드리는 겁니다. 어때요. 좋은 생각이지요?”
“우리야, 검사님이 한턱내시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거 봐요. 두 분은 그만 퇴근하세요.”
“검사님은...”
“저도 정리할 것만 처리하고 곧 퇴근하지요. 뭐...”
정영란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봉투를 내놨고 사무실에 남아있던 직원들이 나서는 바람에 이정수는 마지못해 봉투를 받았다.
“그럼 3일 뒤에 봅시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시고...”
“자 갑니다.”
“푹 쉬십시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권철권과 이정수는 대충 책상을 정리하곤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단지 현장근무를 했다는 것이 고생을 더했다면 더 한 것이지만 그래도 동료들에게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었다.
“선배님! 미안하긴 하네요.”
“너무 미안해 할 것 없어, 작년엔 지들도 그랬잖아...”
두 사람은 언짢았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밝은 표정으로 청사를 나섰다.
---계속
^(^,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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