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은 어린이들 희망입니다.
(백합)
초읍에 있는 한 고급주택,
2층 창문이 열리며 분홍색 커튼이 걷혔다.
이어서 나타난 얼굴은 약간 수척해 보이는 선화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선화는 겨울에나 입었을 법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눈이 부신지 눈을 찡그렸다.
“이젠 학교를 가야지, 헌데 누굴까 그 남잔? 정의에 사나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았는데...?”
“선화야! 뭐하니?”
소리도 없이 방문이 열리며 40대 후반의 여인이 들어섰다.
“엄만! 노크도 없이...”
놀란 듯 몸을 움츠린 선화가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미안하다. 그런데 아직도 그 옷을 벗지 않았구나? 이젠 벗을 때도 되었지 않느냐, 불쌍한 것,”
“엄마는...”
“선화야! 이리와 앉아봐,”
침대에 걸터앉으며 옆자릴 토닥거리는 여인의 눈엔 눈물이 글썽하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선화는 사건 이후 10일 동안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두문불출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하지만 강간당하는 악몽에 시달려 잠을 설쳐야만 했고, 옷을 여러 개 껴입어야 그나마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은밀히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만 했던 선화였다.
10일 전, 신문방송을 통해 초읍에서 벌어졌던 복면강도사건에 대해 자세한 보도가 있었다. 그 보도 중에서도 바람처럼 나타나 강도들을 붙잡았다는 백의청년에 대한 보도가 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었다.
그때의 보도 내용은 이러했다.
초읍동 한 주택에 삼인조 복면강도가 침입 일층에서 잠자던 임대업자 김00과 부인을 결박하고 10억을 요구했다. 강도들은 피해자가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층에서 잠자던 외동딸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런 때에 정의의 사도처럼 느닷없이 백의청년이 나타나 강도들을 제압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강도들은 김00씨의 빌딩관리인과 경비원들로서 관리비를 은밀히 빼돌리다 해고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해고된 것만 앙심을 품고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밝혀졌고, 현재 강도들은 장 파열 및 타박상으로 병원에 입원 치료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어쨌거나 방송에서는 피해자 가족들의 말을 인용 강도를 때려잡은 백의청년을 정의의 청년이라 호칭했다. 그리고 사례를 하기 위해 정의의 청년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에서도 포상하기 위해 청년을 찾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보도 내용 중에 김 선화가 강간당할 위기에 처했었다는 보도는 없었다.
그 후 사람들은 바람처럼 나타나 범인만 잡고 사라진 백의청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큰 보상과 명예도 마다한 백의청년은 누구인가?
백의청년은 실존 인물인가?
피해자들이 꾸며낸 얘긴가? 의혹이 분분했다.
어찌되었든 백의청년이 시민들에겐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정의의 사도 백의청년에 대한 얘기는 잊혀져갔다.
“선화야! 의사선생님도 내일부터는 학교에 나가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 내일부터...”
“알았어, 엄마! 나 이젠 괜찮아...”
“그럼 학교에...”
“내일은 가야지,”
“잘 생각했다. 그럼 아침 먹고 엄마하고 찜질방...”
“엄마!”
별안간 몸을 웅크린 선화가 여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찜질방이란 말에 신경이 곤두섰던 모양이었다.
“애야, 알았다. 넌 집에서 목욕해라!”
여인이 선화를 끌어안으며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선화가 소리친 연유를 잘 알기에 가슴이 미어진 탓이었다.
***
7월 중순, 민혁이 학교에 나간 지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교무회의에서는 민혁의 1학기 수업일수가 부족한 것에 대해 어찌할지 논의가 있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나서서 강민혁은 장학생에 모범학생임이며 가정형편상 어려움이 있었음을 피력하고 선처를 부탁했다. 그 바람에 민혁은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일로 민혁은 교무회의에 나가 선의의 거짓말까지 했었다. 그것이 어머니 병환을 빙자해 강원도 친척집에 약초를 캐러 다녀왔다는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민혁의 가정사를 잘 알고 계셨던 선생님들이 민혁을 두둔하는 바람에 민혁의 거짓말은 진실이 되었고, 오히려 민혁을 대견하다고 교장선생님이하 선생님들이 칭찬했다.
어찌되었든 민혁이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민혁의 변한 모습에 의아해했고 말들이 많았었다. 그렇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뭔가 달라 보이는 민혁을 좋게 생각했다. 특히 민혁의 가정사를 자세히 알게 된 학생들은 민혁이가 보여준 효심에 동정심 내지는 감동까지 먹었다. 대부분 여학생들이었지만...
토요일 오후. 대한고등학교 교정은 체육관을 제외하곤 조용했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었지만 자율학습시간이라 학생들은 교실에서 공부에 열중이었다.
그런 시간에 체육관에서는 태권도 대련이 한창이었다. 대략 30명쯤 늘어선 체육관엔 마지막 선수들이 대련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 중 도복을 입지 않은 몇 명의 학생들이 한쪽에 서 있었다. 민혁과 구 철구, 그리고 낯선 두 학생이었다.
“......”
“강민혁!”
“예 선생님!”
대련이 끝나자 도복을 입은 사범이 앞으로 나섰다.
키 170 정도에 야무져 보이는 30대 초반의 선생님이었다.
“오늘 염상철이와 대련을 하겠다고...”
“상철이가 도전을 했으니 받아줘야지요.”
“염 상철! 대련은 호승심(好勝心)에서 벌이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무도정신에 입각해 치러지는 것이다. 이점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강 민혁! 네가 여러 가지 무술을 독학으로 익혔다는 얘길 들었다. 오늘 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도록, 알겠나!”
“예. 선생님!”
“좋다. 그럼 두 사람 앞으로 나서라!”
“......”
‘상철의 몸에서 사기가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나와는 완전 상극인데...?’
민혁은 상철의 몸에서 밝지 못한 기운을 느꼈다.
전 같았으면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상극의 기운이라 의혹이 들었던 것이다.
이틀 전이었다.
민혁은 먼저 말을 건 선화가 왠지 서먹해 선화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선화의 알몸이 떠올라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내보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선화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더 멋져졌다며 민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사실이지 선화는 바람처럼 나타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한 백의청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선화는 청년을 쳐다보긴 했지만 자세히 뜯어보진 못했다.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에 청년을 봤어도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날 이후 극도의 수치심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피부가 아플 정도로 목욕을 했었다. 밤엔 옷도 벗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고, 밤잠은 악몽으로 설쳤다. 그 바람에 선화는 병원에 가서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차츰 마음에 안정도 되찾게 되자 어렴풋이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백의청년은 누군가를 닮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같은 반 친구인 민혁을 닮았다. 상황이야 어떠했든 선화는 청년에게 알몸을 내보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절대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 백의청년이 민혁이었다면 어땠을까 부끄러운 상상도 했었다.
선화는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혁을 살폈다. 분명 민혁은 옛날의 민혁이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민혁은 백의청년처럼 멋지게 변해있었다. 그때 아무리 겁에 질려있었다 하더라도 지금 민혁이 백의를 입고 있었다면 그 백의청년이 민혁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봤을 것이었다. 그러나 평상시처럼 교복을 입고 있는 민혁은 미심쩍긴 했지만 백의청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선화는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의혹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결국 선화는 민혁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하지만 민혁의 대답은 동문서답이었고, 그때 상철이 끼어들어 대화를 방해했다.
염상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상철이 마음에 둔 여학생은 바로 선화였다.
원래 선화는 남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선화는 예뻤고 인기가 좋았다.
민혁과 염상철은 물과 기름처럼 앙숙이었다.
앙숙인 민혁이 선화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자 상철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상철은 다짜고짜 치욕적인 과거의 옥상결투를 상기시키며 도전장을 냈다. 이번에도 자신이 패한다면 절대로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단, 민혁이 패했을 땐 선화와 얘기도 만나지도 말라는 것과 자신이 하는 일에 일체 나서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
---계속
^(^,
월요일 아침입니다.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용담초)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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