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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한 남자 2011. 11. 1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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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은 아이들 미래입니다.

 

 

그 시각, 정영란은 분홍색 잠옷차림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얼굴엔 무료하다고 쓰여 있었고, 채널도 오락프로를 틀었다가 영화를 틀었다가 계속 버튼 만 눌러 대더니 결국엔 빨간 버튼 눌렀다.

 

“난 이게 뭐야, 연말인데 집에도 못 가고, 공 선배는 잘 지내나, 꽁생원이라 가족들과 보내겠지, 아, 그런데 그분은 전화 한번 안 하네.”

 

처녀히스테리가 도진 것일까, 영란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늘거리는 잠옷이라 영란의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넓은 집에 혼자 살자니 무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친구들이야 많았었지만 법대에 들어가 공부만 하다 보니 자연 친구들과 멀어졌다. 게다가 검사가 되고 나선 오히려 한 번씩 전화통화 하던 친구들까지 멀리한 것이 되었다. 이상하게 전화가 오면 꼭 바쁠 때 왔고, ‘전화할게’ 해놓곤 전화를 못했다. 그랬으니 누가 좋아했겠는가, 그렇게 영란은 혼자가 되어갔다.

 

어쨌든 영란도 학창시절엔 자신을 짝사랑하며 꽁무닐 졸졸 쫓아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나이 30에 철학과 교수가 된 공수래(孔手來)라는 교수였다. 공수래는 대학원시절인 5년 전 갓 법대에 들어온 영란을 만났고 그때부터 짝사랑이란 병에 걸렸다. 영란이 어리긴 했지만 공수래는 친구들에게 내 짝은 죽으나 사나 정영란이라고 떠벌이고 다녔었다. 공수래란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철학교수가 된 후에는 이름 덕에 교수가 됐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영란은 자신의 허락만 떨어지길 기다리는 바보 같은 선배를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선배의 청혼을 받아 드릴 수는 없었다. ‘네 짝이 나타나면 청혼을 취소하겠다. 그 전에는 평생이라도 너를 기다리겠다.’라고 말한 선배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사실 영란은 동래 화재사건을 보고 민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산업스파이 사건이후 전화도 하지 않던 민혁이 화재현장에 나타나 인명을 구조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건수사도 지켜봤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런데 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확실한 정보를 줬는데도 해결을 못한 검찰과 특히 영란 자신을 불신하기 때문이란 결론이었다.

 

어쨌든 산업스파이 사건은 범인도 잡지 못한 채 미해결사건으로 남았다. 배후의 인물로 지목되었던 대일상사 대표 마도식도 무협의 처리가 되었다. 정보를 준 입장에서 사건해결을 못했으니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영란은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영란은 자신도 모르게 전화벨이 울리면 그분인가, 반가움에 전화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울에나 올라갈까, 가면 뭐해 또 선이나 보라고 할 걸...”

기지개를 켜듯 팔을 뻗어 올린 영란의 눈은 멍하게 천장만 응시했다.

 

 

한편 저녁 7시경이었다.

민혁이 소라를 만나기 위해 선물바구니를 챙길 무렵,

염균호 집에선 염균호와 마도식, 우즈키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염균호의 서재인 듯 책장엔 법에 관련된 서적뿐만 아니라 두툼한 서적들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대략 2백여 권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청자와 백자가 괴목(槐木)으로 만든 받침대위에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고, 유독 눈에 띠는 것은 벽걸이에 얹혀있는 두 자루의 크고 작은 검이었다. 아마도 일본 무사들이 사용했던 검 같았다.

 

“무쯔키께서 오셨습니다.”

마도식이 탁자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습니까, 정말 잘 됐습니다.”

“무쯔키님은 저번 화재사건에 나타났던 자가 그자라고 확신 하셨습니다. 어떻게든 놈을 잡아 죽이겠다고 이를 가셨지요.”

마도식의 목소리엔 그동안 당한 일 때문인지, 분기가 서려 있었다.

“화재사건 때 그잔 대단해 보였습니다. 세상에 그런 자가 다 있었나, 암튼 그랬으니 일을 망... 음...”

 

염균호의 얼굴엔 불안함과 놀람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사실이지 염균호로선 은근히 불안했다.

놈의 활약이 일반인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낌이지만 자신의 행동에도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아니 문제가 제기 될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 놈의 행적을 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 종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방송에서 찾고 난리인데도 놈이 나타나지 않으니, 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즈키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놈의 K.R.S.에선 놈에게 엄청난 보상금을 주겠다고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겠지요. 검사님!”

“마 사장, 사실입니다. 그 돈이면 평생을 흥청망청 써도 남을 텐데... 아무튼 알다가도 모를 놈입니다. 하긴 검찰청에서도 포상을 하겠다고 광고까지 했는데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는 놈인 것 같습니다. 하루속히 놈을 잡아야할 텐데...”

대놓고 잡아 죽이라곤 말은 못했지만 속으론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예의 청년을 하루속히 잡아 죽였으면 하는 것이 염균호의 마음이었다.

“이거 찾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우즈키! 어떻게 해서든 놈을 빨리 찾아라! 그놈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구중입니다. 사장님!”

“......”

 

똑똑--

“간단하게 술상을 준비했습니다.”

노크소리에 이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소! 곧 내려가리다.”

“번번이 신세를 집니다.”

“무슨 말씀을... 자들 내려갑시다.”

“앞으로도 검사님이 잘해 주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특히 놈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즉시 연락을 주십시오.”

“그건 염려 마시오. 그만 내려갑시다.”

 

그동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서재를 나서는 그들의 표정이 음흉스러운 것을 보면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었다.

“......”

 

 

도심의 야경은 언제 봐도 황홀할 정도로 현란하다. 그 황홀한 현란함 속에 하나 둘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것은 음모와 탐욕이란 괴물이다. 그래도 밤은 밝은 사회를 위한 휴식시간이자 밝은 내일을 위해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밤은 그렇게 양날의 칼처럼 날마다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오늘 밤도 그렇게 몸부림을 칠 것이다.

 

뚜벅, 뚜벅, 뚜벅,

 

그 시각, 밝은 조명에 국제오피스텔 11층 복도의 정경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 사나이가 복도 중앙으로 걸어갔다. 사나이는 검은색 정장을 했으며 보통 체구에 날렵해 보였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사나이는 발걸음을 세듯이 뚜벅뚜벅 걸어서 복도 끝 1111호 푯말이 붙은 문 앞에 우뚝 섰다.

 

인력개발연구소,

문 옆엔 나무로 만든 인력개발연구소란 현판이 세로로 걸려있다.

사나이는 복도를 한차례 둘러보곤 손잡이 옆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다.

자동문인 듯 문이 열렸고 사나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일반 사무실과 다름없는 평범한 20평쯤 되는 사무실이었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문 바로 앞엔 응접소파가 좌측엔 연구소 소장이란 명패가 놓인 책상과 철제서류함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우측엔 두 개의 책상이 놓여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작은 붙박이 책장이 있었다. 안쪽 칸막이 안은 작은 주방이었다. 사무실엔 한 사나이가 소파에 앉아 조는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사나이가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나이를 맞았다.

 

“후즈키! 늦었구나, 무쯔키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늦을 거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두 사나이는 붙박이 책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두 사나이는 공항에서 무쯔키를 호위했던 사나이들이었다. 후즈키라 불린 자의 본명은 가토 후즈키, 30세로서 키 170, 보통체격에 날렵하게 생겼다. 특히 뱁새눈처럼 눈매가 날카로웠다. 닌자술 중에서도 표창의 명수였고 무쯔키의 심복이다. 그리고 고바야시 야마다, 31세로서 키 167, 마른 편이다. 역시 무쯔키의 심복이다.

 

붙박이 책장엔 수십 권의 서적들이 꽂혀있었으나 전문 서적이 아닌 일반 서적들이 대부분이었다. 책장 앞으로 다가간 후즈키가 벽에 박혀있는 액자 걸이를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듯 책장이 뒤로 밀려났다. 문이 열리자마자 눈에 들어 온 것은 한창 작동이 되고 있는 최첨단 기기와 몇 대의 컴퓨터였다. 방음장치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밖에선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방안엔 무쯔키와 낯선 자가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두 사나이가 안으로 들어서자 열렸던 붙박이 책장이 소리도 없이 닫혔다.

컴퓨터에 뜬 동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던 무쯔키가 돌아봤다.

무슨 동영상을 봤는지 무쯔키의 얼굴은 우거지상이었다.

 

“수고했다. 모두 이쪽으로...”

 

무쯔키는 밝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곤 사나이들을 중앙에 놓인 원탁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러고 보니 방안은 밖의 사무실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주방시설은 물론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별도로 침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기거를 하며 은밀히 활동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쯔키님! 일단 도청장치만 설치를 했습니다.”

“놈이 반일에 앞장서는 놈이다. 어떻게 해서든 놈의 약점을 찾아내 국회에서 매장을 시켜야한다.”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야마다! 정치적 이슈가 될 수도 있다. 신중을 기해야한다. 그리고 저놈 말이다. 보면 볼수록 기분 더럽다. 무슨 수를 내야 하는데...”

무쯔키는 컴퓨터를 가리키며 인상을 써댔다.

컴퓨터엔 민혁과 관련된 동영상이 떠 있었다.

크게 확대된 얼굴이 떠 있었는데 민혁과 흡사할 정도로 비슷했다.

머리가 짧고 교복을 입었다면 민혁이라고 확신할 정도로 닮았다.

 

“그런데 무쯔키님, 아지트를 옮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검찰에서 이 오피스텔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낯선 자가 나섰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조선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한번 수사를 했던 곳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놈들이 감시하는 것은 형식적이다. 그러니 이곳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을 것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갑니다.”

“우선 말이다. 놈을 잡을 방책을 강구해라!”

“그렇지 않아도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슨 좋은 방도라도...”

“예, 제 생각엔 놈이 나타나도록 만드는 겁니다.”

“뭐라! 놈을 나타나게 만든다.”

“.......”

 

무쯔키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동영상의 인물인 민혁을 찾는데 주력했다. 그만큼 쌓인 감정이 많다는 얘기였다. 어쨌거나 무쯔키는 그동안 우즈키가 알아낸 단서를 가지고 민혁을 추적했으나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동래 화재사건 때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민혁에 대해 물었었다. 하지만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래도 좋은 정보를 알아내긴 했다. 그것은 한국에 자신들과 대등한 자가 있다는 것이었고, 무신의 말처럼 방해물인 상극의 정체가 동영상의 청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청년의 스승이나 조직이 더 있을 것이라 본 것이었다. 자신들이 뿌리를 뽑아야 할 적이 더 있을 것이라고 무쯔키는 확신했고 그것이 성과라면 큰 성과였다.

 

어쨌든 무쯔키는 상대의 청년이 자신을 능가하도록 출중한 것은 자신들의 조직처럼 스승과 조직이 있다고 본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라 내색은 못했지만 무쯔키는 불안했다. 또다시 임무에 실패를 한다면 자신의 입지뿐만 아니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할복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무쯔키로선 어떻게 해서든 민혁을 잡아 복수도 하고 걸림돌인 조직이 있다면 뿌리 채 뽑아내야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할 것이었다. 그 바람에 무쯔키는 처리를 했어야 할 몇 건의 임무를 미루고 있었다.

 

그들은 야마다의 얘기를 들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특히 무쯔키의 얼굴에 어렸던 그늘이 싹 가셨다.

야마다가 무슨 얘길 했는지, 무쯔키를 흡족 시킬 정도로 기발한 발상의 얘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계속

 진실은 가감없이 말했을 때가 진실인 것이다.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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