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은 아이들 희망입니다.
따르릉, 따르릉...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김성원이 잠옷 바람으로 거실로 나왔다.
시간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여보세요?”
‘듣기만 하시오. 오늘 밤 9시 광안리 백사장 동쪽 간이화장실 앞에서 기다리시오.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겠소!’
찰칵,
전화는 끊겼고, 김 성원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할 목소리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백사장에서 목격한 끔찍한 살인사건을...
김성원은 신문방송을 통해서도 사건소식을 들었다. 방송에서는 끔찍하게 살해당한 피살자의 목 부위를 상세히 내보내면서 단칼에 두 사람의 숨통을 끊은 것으로 보아 범인은 고도로 수련을 받은 살인귀일 것이라고까지 떠들어댔었다. 그랬으니 직접 목격한 김성원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되었다.
“으... 이젠...”
“여보! 또 그잔가요?”
언제 따라 나왔는지 수화기를 든 채 서있는 김성원에게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별일 아니오. 술이나 한잔해야겠군.”
김성원은 억지 미소를 짓곤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여보! 나에게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잖아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예요. 말해 봐요. 네.”
부인은 남편을 따라가며 따지듯 말했다.
“별일 아니라니까! 그만 들어가 자 구려,”
언성을 높인 김성원은 술잔과 먹다 남은 양주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김성원은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물을 마시듯 마셨다. 이를 지켜보는 부인으로선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만 봐도 속상했다.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딸도 무사히 돌아왔고 범인도 잡힌 마당에 전전긍긍하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검찰에서까지 조사를 왔다가 갔는데도 계속 불안해 보이니 덩달아 불안한 부인이었다.
사실은 검찰에서 직접 나와 조사를 벌였었다. 딸인 미애는 자신이 납치당했던 날짜와 시간, 국제오피스텔에 끌려갔다가 풀려나기까지의 상황을 침착하게 말했다. 검찰에선 몸값을 요구했느냐? 납치한 연유가 무엇이냐? 원한 관계가 있었느냐? 등등을 미애와 김성원 부부에게 따지듯이 물었었다. 하지만 미애는 욕 등, 모욕을 당한 것 이외는 크게 육체적 학대도 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김성원은 찔리는 것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말했고 부인도 남편의 눈치를 봐가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부인은 수사관들에게 딸이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지만, 그런 나쁜 놈들은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격하게 말했었다.
“아빠, 엄마, 무슨 일예요?”
잠을 설치고 있던 미애가 겉옷을 걸치며 방에서 나왔다.
“별일 아니다. 너도 잠이 안 오는 게냐?”
“그럼 잠이 제대로 오겠어요. 그런 일을 당했는데...”
“엄마는 괜히 아빠한테 신경질이야...”
“글쎄, 네 아빠가...”
“여보! 공연히 심란하게 만들지 말구려, 별거 아니다. 네가 무사히 돌아와서 좋지만, 정말 놈들이 별다른 짓거린 없었는지 걱정도 되고...”
“아빠는... 정말 놈들은 별다른 짓은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의문이긴 하지만, 이젠 밖에 나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뭐! 아직은 안 된다. 며칠 더 쉬었다가 나가거라!”
별안간 김성원이 놀란 듯 나섰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정말 이상하시네.”
“네가 걱정이 돼서 그렇지, 아무튼 며칠 더 쉬 거라!”
미애와 부인이 이상하다는 듯 의혹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김성원은 눈길을 피해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쨋거나 죽어도 밖에는 못 나갈 것 같던 미애였지만 범인들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진정되었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 정도가 되었다. 김성원 부부도 딸애가 심적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까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딸애의 밝은 모습에 한시름 놓기는 했다. 그렇지만 딸애가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 마음이었다. 특히 김성원은 딸인 미애가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 시각이었다.
민혁은 국제오피스텔 1층에 와 있었다.
새벽 1시가 지나고 2시가 다된 시간이지만 하나 둘 사람들은 들락거리고 있었다.
민혁이 암동에 들렸다가 집에 돌아갔을 땐 밤 10시가 넘었을 때였다. 민혁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배와 복숭아를 두개씩 네 개를 따왔다. 물론 약수도 큰 통으로 한 통 받아왔다. 밤이 늦긴 했지만 영선은 딸들을 불러 과일 잔치를 벌였다. 누나들은 배는 써서 못 먹겠다고 엄마에게 드렸고 복숭아는 엄마 몫에도 눈독을 드릴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누나들은 세상에 이렇게 크고 맛있는 복숭아는 처음이라며 어디서 따왔는지 물었지만 민혁은 그냥 아는 곳에서 따왔다고 대답하곤 엄마 복숭아엔 눈독도 들이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11시 30분, 민혁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선은 이 밤에 또 나가냐고 말렸지만 맘이 뒤숭숭했던 민혁은 걱정 말라며 집을 나섰다. 민혁도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지만 현장이라도 돌아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집을 나왔고 곧바로 국제오피스텔로 달려온 것이었다.
“아저씨! 나도 이 오피스텔에 들어와서 살까 생각 중이었는데, 어디 무서워서 살겠습니까?”
“에끼, 젊은 사람이 겁은 많아서, 그래 납치범들이 잡혔다고 뉴스에 나왔던데, 자네도 들었는가?”
“놈들이 잡혔습니까? 난 못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놈들은 사형을 시켜야 해! 그리고 해운대 살인사건 말이야, 그 쳐 죽일 범인 놈도 빨리 잡혀야 할 텐데... 곧 결혼할 연인들이었다고 하던데 정말 안 됐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러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아저씨! 이곳에서 일하시긴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긴, 처음엔 낮과 밤이 바뀐 것이...”
“아, 그랬겠군요. 밤에 근무를 하다...”
민혁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경비와 얘길 나누다가 별안간 말을 중단하곤 눈을 반짝였다.
한 사나이가 그들을 스쳐 공중전화박스로 다가갈 때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낮에 잠자면 잔 것 같지도 않을 텐데...”
“뭐 이젠 습관이 돼서 괜찮네.”
“이런 잔돈이 없네, 커피한잔 할까 했더니...”
민혁이 주머니를 뒤지자 경비가 나섰다.
“뭘, 내가 한잔 뽑아 오지...”
“고맙습니다.”
‘살기가 느껴지다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누굴까?’
민혁은 경비가 자리를 뜨자 귀를 쫑긋거렸다.
사나이는 10미터쯤 떨어진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나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검정바바리코트를 입었고 머리는 장발이었다.
‘마 사장님! 내일 오전 비행기를 예약해 주십시오. 예, 예, 오늘밤 광안리 백사장에서 물건을 접수합니다. 그래서요. 예,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오에 놈들을... 검찰을 속이기엔 그만한 일이 따로 없습니다. 준비나 제대로 해 주십시오. 그럼...’
“......”
“이봐! 뭘 그렇게 생각해...”
경비가 고개를 숙이고 서성거리는 민혁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니, 금방 어딜 갔지...?’
민혁이 커피를 받아드는 사이 검정바바리코트 사나이는 유유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아, 좋네요. 그런데 아저씨, 아까 전화를 걸었던 사람 말입니다.”
“누구... 아 바바리코트,”
“예 아저씨!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글쎄, 바바리를 입고 다녀서 기억은 하지만, 어쩌다 봤기 때문에 뭘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는데, 그건 왜?”
“좀 특이해서 말입니다.”
“허긴, 요즘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흔치는 않지, 아무튼 괴짜 같은 사람이라니까,”
“그럼 몇 호에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야 경비만 섰지, 관리실...”
“아저씨, 잘 마셨습니다. 또 놀러 올게요.”
민혁은 얘길 자르고 꾸벅 인사했다.
“이곳에 들어와 살면 자주 보겠군.”
“예 아저씨...”
민혁은 슬쩍 손을 들어 보이곤 밖으로 나왔다.
‘마 사장이라고 분명히 말했어, 그렇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 모양인데, 내일 오전엔 비행기 예약이라, 오늘밤엔 광안리 백사장, 그리고 정오엔 놈들을 어쩐다는 걸까? 검찰을 속이기엔 그만한 일이 따로 없단 말이지, 제기랄, 이게 뭔 소린지...?’
민혁은 밖에 나오자마자 사나이가 한 말을 되뇌어 봤다.
---계속
^(^,
마음이 부자면 부러울 것이 없다.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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