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입니다.
다음날 아침 9시경,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민혁은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있었다. 새벽 5시까지 노포동 일대의 화원들을 살폈지만 납치범들의 흔적은커녕 낌새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왔다. 분명 민혁이 들은 것은 노포동 화원이란 말이었고 절대로 잘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외딴 집이나 산 속까지 이 잡듯 살폈었다. 그런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필시 도중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되었다.
‘화원 이름만 알았어도, 차도 없었으니 노포동으로 가진 않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나중에 다시 가보는 수밖에...’
똑똑-
노크소리에 이어 영선이 방으로 들어섰다.
“아들, 피곤해도 아침은 먹어야지...”
“알았어요. 그런데 엄마! 몸은 좀 어떠세요.”
“봐라! 네가 갖다 준 약수와 과일을 먹고 많이 좋아졌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영선은 무릎을 만져가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야, 정말 좋아지신 모양이네, 엄마! 약수 다 드셨죠. 요새 바쁜 일이 있어서, 오늘 약수와 과일을 더 가져올게요. 나가요 엄마, 그런데 엄마! 약수나 과일 얘기는 비밀입니다.”
“알지, 누나들 한 테도 말 안 했는걸...”
사실은 약수와 과일을 더 가져온다는 것을 민혁은 깜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신경을 덜 쓴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건강을 꼼꼼히 보살펴 드리진 못했지만 시간 나는 대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재미있는 대화도 나눴다. 무엇 보다도 민혁은 엄마의 병환이 점차 좋아지고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특히 약수와 과일이 암동에서만 약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약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더 기뻤다.
영선은 아들과 함께 먹으려고 겸상을 차렸다. 밥상엔 몸에 좋다는 잡곡밥을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과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이 놓여있었다. 반찬은 민혁이 좋아하는 김치와 콩나물무침이었다. 원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기반찬은 자주 해 먹질 못했다. 그렇다보니 주 반찬은 김치였고 콩나물무침과 두부찌개였다. 하지만 민혁은 김치나 콩나물무침 한 가지 반찬이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 어떤 반찬보다도 김치와 콩나물무침을 민혁은 좋아했다.
‘우리 아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몸 생각도 해가면서 일을 해라. 요즘 밤낮이 없으니, 이 어민 건강을 해칠까봐 걱정이다.’
밥을 푹푹 떠서 탐스럽게 먹는 아들을 지긋이 바라보던 조영선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사라졌다.
‘엄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오. 아들은 씩씩하게 할 일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엄마의 병환도 나을 겁니다. 그리고 엄마, 금정산 밑에 텃밭과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 중입니다. 나중에 엄마와 의논 할 게요.’
민혁의 예리한 눈은 엄마의 얼굴에 근심이 스치는 걸 알아봤다.
순간 마음이 찡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문제를 조만간 의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민혁은 허름해도 좋으니, 금정산 밑에 텃밭이 있거나 마당이 넓은 개인주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암동과 가까이 있는 곳에 집이 있다면 여러모로 활동하는데 편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민혁은 이사할 생각을 굳힌 듯 보였다.
반면 영선은 아들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한 번씩 꿈도 꿨는데 악몽은 아니더라도 아들이 힘들어하는 꿈을 꿀 때는 밤늦게 다니는 것을 말리고도 싶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색도 할 수 없고, 그냥 지켜만 보자니 이 또한 어미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선은 아들을 믿었고, 아들의 일에 일체 간섭을 하지 않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라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다만 속을 끓이더라도 우리 아들은 좋은 일만 할 것이라 믿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한편 그 시각,
김성원의 집에서도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납치를 당했다던 딸인 김미애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미애의 수척한 모습에서 그동안 얼마나 공포에 시달렸는지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김 성원 부부가 얼마만큼의 심적 고통을 당했는지, 부부의 몰골만 봐도 짐작이 되었다. 그들은 밥맛이 없는지 젓가락을 깨작거릴 뿐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있었다.
김미애가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경이었다. 납치범인 김충식은 노포동으로 향하는 도중에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받은 김충식은 차를 돌려 사직동으로 향했다. 사직동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김충식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입만 뻥끗하면 가족들이 몰살당할 것이라는 협박을 해대곤 김미애를 풀어줬다.
김성원 부부는 그때까지도 거실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딸이 무사히 돌아오자, 모녀는 얼싸안고 통곡했다. 하지만 김성원은 이미 딸을 돌려보낸다는 전화를 받은 뒤라 한시름 놓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걱정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딸을 살려 보내는 대신 결정을 빨리 내리라는 협박에 어찌해야 할지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거렸다.
“......”
어찌되었든 김성원은 문득문득 떠오른 해운대 살인사건으로 깜짝깜짝 놀랐다. 난생처음 살인을 목격했다. 그것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짐승을 죽이듯 가차 없이 두 사람이나 죽였다. 김성원으로선 도저히 납득도 이해도 할 수가 없었다. 낮선 자의 살인행각은 김성원 자신에게 누구도 죽일 수 있다는 경고였기에 두려움에 치를 떨 뿐이었다.
“미애야, 별일이 없었다니 다행이지만, 당분간은 집에서 쉬도록 해라! 그리고 당신, 당신도 밖에 나가는 일은 삼가 하시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우미 아줌마를 시키고, 암튼 당신이나 미애, 내가 없는 동안 경찰에 신고를 한다든지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릴 할 테니...”
김성원은 차분히 말했지만 목소린 침통하다 못해 떨렸다.
“그런데 여보, 오늘은 당신도 집에 있어요. 무서워요.”
부인의 잔뜩 겁먹은 목소린 듣기에도 가슴이 아팠다.
“무섭긴, 걱정 마시오. 허허허-”
김성원은 애써 허허거렸다.
미애는 고개만 끄덕이며 멍하니 김성원을 쳐다봤다. 졸지에 흉흉한 자들에게 납치를 당해 온갖 수모를 당했을 테니 제 정신일 리가 없었다. 그런 딸을 쳐다보는 김 성원의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말은 못하고 걱정 말라는 뜻으로 딸의 손을 굳게 잡았다 놨다.
“여보! 오늘은 나가 봐야 해, 나 때문에 연구에 차질이 생겨서야 되겠소. 오 박사가 무슨 일이냐고 난리니, 으흠...”
수저를 내려놓으며 김성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김성원은 밖에 나간다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긴 내려야 했다. 그것이 경찰에 신고를 하느냐, 연구 자료를 넘기느냐, 아니면 죽음을 택하느냐, 명예를 지키느냐 하는 것이지만...
한편 검찰청 회의실은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각 부서 검사들이 50대로 보이는 검사장에게 보고 및 지시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중엔 정연란과 염균호도 끼어 있었다.
“우 검사! 해운대 사건은 어떻게 된 일이야? 보고해 봐!”
검사장이 차갑게 말했다.
“사체를 검시한 결과 목에 난 상처로 보아 예리한 무기에 살해된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범행 현장은 사채가 발견된 부근이었고, 사망시간은 어젯밤 9시경으로 추정이 됩니다. 아직 이렇다 할 단서나 물증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현재 수사관들과 관할 경찰서 형사들이 탐문수사 및 증거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입니다.”
“인천에선 토막시체를 발견하지 않나, 어떻게 이런 일이... 좋아, 그건 그렇고 정 검사! 자넨 말이야, 납치사건이라고 난리를 쳤으니, 범인은 잡았겠지, 보고해!”
한차례 인상을 써댄 검사장은 정영란을 직시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달려갔을 땐, 범인들이 도주한 뒤였습니다. 현장 조사결과...”
“됐어, 그만해! 확실한 정보도 아닌데 인력낭비만 했잖아, 그럴 시간 있으면 방범을 서던지, 살인범들이나 잡아와!”
검사장은 도중에 말을 끊곤 언성만 높였다.
“검사장님! 그게 아닙니다.”
“됐다니까, 그 사건은 염부장이 검토할 거야, 그렇게 알고, 정 검사는 일전의 살인사건을 해결했듯이 이번에도 우 검사를 도와 해운대 살인사건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꼭 범인을 잡게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속이 뒤틀려 따지고 싶었지만 영란은 참았다.
검사장은 마약 밀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는 엄한 지시를 끝으로 회의를 마쳤다.
각 검사들은 경직된 얼굴로 회의실을 나섰다.
그때 염균호와 검사장은 회의실에 남아 한참동안 쑥덕공론을 했다.
시각은 정오를 지나, 오후 1시경이었다.
민혁은 어머니와 오전을 보내고, 노포동 전철역에 와 있었다. 아무래도 놓친 것이 있지 않나 한 번 더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는 중에 정오뉴스를 들었다. 어젯밤에 해운대백사장에서 벌어진 연인살인사건에 대한 속보였다.
예리한 흉기로 단번에 숨통을 끊어 살해한 것으로 경찰에서는 밝혔고, 살해한 다음 곧바로 바다에 버려졌다는 내용이었다. 밤 아홉시 경이라면 적잖은 사람들이 백사장을 걸어 다닐 시각이었다. 그럼에도 범인은 현장에서 사람을 죽여 그대로 방치한 것이 되었다. 얼마나 대담한 범인이면 사람을 그것도 두 사람이나 죽여서 그대로 방치하다시피 버렸을까, 아나운서도 무서운 세상이라고 덧붙였다.
“음, 납치사건에 살인사건까지, 혹시 납치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예리한 흉기로 단번에 숨통을 끊었다면, 이것은 분명 전문적인 살수(殺手)의 짓인 것 같은데··· 상처를 보면 감이 잡힐, 으 죽은 사람을 어떻게 봐! 그래 일단 정 검사에게 전화를...”
민혁은 핸드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곤 공중전화박스로 걸어갔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고 나와 옆에 놔뒀던 커다란 보따리와 과일상자를 들려고 애를 썼다. 과일상자엔 과일이 아니라 시골에서 재배를 했는지, 흙이 잔뜩 묻은 고구마가 그것도 상자가 터질 듯 담겨 있었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총각, 지하철을 타고 교대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제가 들어다 드리겠습니다. 차표는...”
“미리 사긴 했는데,”
“그럼 됐습니다. 따라오세요.”
민혁은 미안해하는 아주머니에게 웃어 보이곤 양손에 보따리와 상자를 들고 앞섰다. 보따리와 고구마상자는 제법 무거웠다. 아주머닌 민혁이 보따리와 상자를 거뜬히 들고 가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민혁이 암동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보따리와 상자를 가볍게 들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만큼 상자와 보따리는 무거웠다. 민혁은 차안까지 물건을 실어드렸다. 아들집에 다니러 간다는 아주머니는 너무 고맙다며 거듭거듭 인사를 했고, 민혁은 잘 다녀가시라고 말씀드리곤 다시 밖으로 나왔다.
“검사님! 살인사건이 납치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여보세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납치사건은 허위정보로, 직접 만나서 얘기하기 전엔 당신 말은 밑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떳떳하다면 공중전화를 쓸 이유가 없잖아요. 저번 살인범을 잡았을 때도 자신을 밝히지 않았고요?’
정영란의 격앙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것이, 검사님! 차후 뭔가를 보여드리죠.”
‘여보세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누그러진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씁쓰레한 표정인 민혁은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5장으로 이어집니다.
^(^,
진실은
가감없이 말했을 때가 진실이다.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판타지(white tig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white tiger 24 (0) | 2011.11.09 |
---|---|
소설, white tiger 23 (0) | 2011.11.08 |
소설, white tiger 21 (0) | 2011.11.06 |
소설, white tiger 20 (0) | 2011.11.05 |
소설, white tiger 19 (0) | 2011.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