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은 아이들 희망입니다.
민혁은 아침을 먹고 침대에 앉아 사나이의 말을 곱씹으며 추리를 하고 있었고, 영선은 자리를 깔고 누워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영선은 어젯밤 배를 다 먹고 자라는 아들 말에 그 큰 배를 다 먹고 잤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몸에서 신열도 아닌 열이 심하게 났었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무슨 놈에 땀이 그리 나는지 비 오듯 땀을 흘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이부자린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쑤시던 무릎도 아프지 않자 기쁜 마음으로 밥도 하고 딸들을 출근까지 시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날 생각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하지만 막상 누우니 아들이 장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조건 아들을 믿겠다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 밤낮 없이 밖으로 나도는 아들이 걱정인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다. 영선은 아들 걱정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민혁이 나갈 차비로 방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납치범들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민혁은 살짝 열린 방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봤다. 너무 곤하게 주무시는 엄마의 얼굴이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지, 민혁은 한시름 놓았다. 민혁은 가만히 들어가 엄마의 이마에 손을 얹어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이마를 짚어 봤지만 열도 없고 정상이었다.
“엄마! 푹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몸이 홀가분할 겁니다. 역시 과일의 약효는 대단해, 난 행운아가 맞을 거야...”
행운아라고 말은 했지만 민혁의 얼굴엔 쓸쓸함이 어렸다.
민혁은 요즘 통 학교도 못 가고 절친한 친구인 철구도 못 만났다. 게다가 보고 싶은 선화도 몇 번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지만 바쁜 일이 있다고 말하곤 만나지 않았다. 한번 만나면 자꾸만 만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보고 싶은 사람도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고역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기에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민혁은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지만 한 번씩 얼굴에 나타나는 쓸쓸함까지 감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민혁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놓곤 조용히 방을 나섰다.
집을 나선 민혁은 검찰청을 경유하는 버스를 탔다.
민혁이 검찰청 부근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경이었다.
그때 정영란은 취조실에 있었다.
드르르, 드르르,
‘누구지...? 혹시...’
정영란은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이 울리자 얼른 꺼내들었다.
혹시나 민혁은 아닐까 생각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영란은 이정수 수사관에게 눈짓을 하곤 취조실을 나서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 분이시죠?”
‘예, 뭐 좀 알아냈습니까?’
“아직...”
‘그럼 묻겠습니다. 김미애씨 가족사항을 알고 싶습니다.’
“알았어요. 지금 취조실인데, 사무실에 가서 받을게요.”
‘알았습니다. 3분 후, 다시 걸겠습니다.’
영란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의심 없이 민혁을 믿기로 했다. 처음부터 민혁을 못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염 부장이나 수사관들이 자신을 밝히지 않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잠시 의혹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영란이 밝은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말해 보세요.’
“김 미애의 가족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부터 말하세요?’
“이름은 김 성원 51세에 전자공학박삽니다. 현재는 반도체회사인 K.R.S의 연구실장입니다.”
‘지금 박사가 특별히 연구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있어요. 나노기술을 응용해 최첨단 무슨 메모리칩을 개발 중이었는데, 개발에 성공했다는데요. 그리고 생산 단계에 들어가면 한해에 수백억불 수출도 가능하다는...”
‘정 검사! 바로 그거요. 놈들이 김미애를 납치한 목적은 기술을 빼내려는 겁니다. 참 집이 어딥니까?’
“우리 집...”
‘제길, 김성원씨 집말입니다.’
“사직동... 럭키아파트 5동 1017혼 데요.”
‘정 검사! 놈들의 배후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김성원씨는 물론 가족들 신상을 보호하세요. 은밀히 말이요. 그리고 놈들을 문초하면 배후를 밝히게 될 겁니다. 마도식이 어떤 자인지... 또 연락하지요.’
철컥-
영란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검사님! 또 그 친굽니까? 무슨 정보라도...”
“여러분! 큰일 났어요. 놈들이 노린 것은 김성원이 개발한 메모리칩입니다. 지금즉시 사람을 풀어 김성원의 행방을 찾으세요. 집에도 사람을 보내 감시토록 하구요.”
“......”
정영란이 한창 사건에 대한 지시를 내릴 그 시각이었다.
검찰청으로 한 대의 승용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검정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30대 사나이가 면회실로 향하고 있었다. 사나이는 안경을 꼈으며 특징은 장발이었다.
12시가 되자 검찰청 직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청사를 나가고 있었다. 그런 때에 장발의 사나이가 3층 구석에 있는 면회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면회실은 변호사나 주요인물들이 피의자(被疑者)를 만나 보는 곳으로서 일반면회는 금지가 된 곳이었다.
취조실엔 범인들과 이 정수 수사관이 이실직고해라, 우린 모른다.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 서 있던 한 사나이가 인터폰으로 이 정수 수사관을 찾았다.
“이 수사관님, 점심시간입니다. 그리고 잠깐 피의자(被疑者)들을 면회실로 데려 오라는데요.”
“뭐야, 면회실...”
“예, 점심시간을 이용해 면회할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야 새끼들아! 일어나라. 그래도 밥 사줄 사람은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누구야?”
이정수가 충식과 종구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고, 좀 뚱뚱해 보이는 40대 중년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변호사 우범식이라 합니다. 피의자들에게 물어볼 얘기가 있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할 말은 무슨, 아무튼 빨리 끝냅시다. 밥 먹으러 가야 하니까? 아셨소! 변호사양반!”
“알겠소! 몇 마디 전할 말만 전하면...”
“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일이 심상치 않음을 전하러 권철권이 달려왔다.
“변호사 양반께서 잠깐 면회를 하겠다는데...”
“면회요. 이거 시간이 없는데... 선배님, 빨리 끝냅시다.”
“갑시다. 쌍눔의 새끼들...”
이정수가 못마땅하다는 듯 변호사를 쳐다보곤 수갑을 찬 충식과 종구를 밀쳤다.
“이러니, 없는 죄도 뒤집어 쓸 수밖에...”
변호사가 씨부렁댔다.
“뭐요?”
“난, 강압수사가 못마땅하다는 얘깁니다.”
“변호사란 것들이 뭘 알기나 해야지...”
권철권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긴 복도를 따라 면회실 앞에 거의 당도했을 때였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장발사나이가 별안간 범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눔의 새끼들은 죽어도 쌉니다. 내 동생도 납치됐다가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야! 개새끼들아! 할 짓이 없어서 여자들을 납치를 하냐!”
사나이는 멱살을 잡아 흔들며 쌍소릴 해댔다.
“이봐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비켜요.”
권철권이 눈을 부라리며 잽싸게 나섰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범인들의 멱살을 잡은 사나이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 깜박일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짝이는 물체가 범인들의 목에 박혔고 충식과 종구가 눈을 부릅뜨며 끙끙거렸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단지 목이 눌려 끙끙거린 것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들은 죽어야...”
“이 사람이 정말, 비키라니까!”
사나이가 물러서지 않자, 권철권이 인상을 쓰며 사나이를 휙 밀쳤다.
사나이는 넘어질 것처럼 서너 걸음 물러나서도 악담을 해댔다.
“저런 새끼들은 죽어도 쌉니다. 개새끼들, 곧 뒤질 거다.”
정말이지 여동생이 납치당해 죽은 것처럼 사나이는 인상을 써대며 악담을 퍼붓곤 비실비실 비상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헌데 힐끗 뒤돌아보는 사나이의 입가엔 싸늘한 미소가 어렸고, 눈에선 날카로운 빛이 일렁거렸다가 사라졌다.
“쯧쯧- 동생이 납치됐다가 죽었으니, 화가 날만도 하겠지,”
이정수는 사나이가 사라진 계단 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말입니다. 야, 야, 봤지, 어라, 이 새끼들이 왜이래 이거...? 선배님! 뭔가 잘못 된 것 같습니다.”
권철권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충식과 종구를 건드리자 그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들은 의식을 잃은 듯 눈을 까뒤집고 있었고 쓰러져선 게거품까지 게워냈다. 권철권은 아연실색하여 충식과 종구를 흔들어댔다. 마치 묵직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다.
“이 새끼들이 정말 왜이래...? 변호사! 119...”
“야야, 정신 차려! 선배님, 아까 그 새끼가 수상...!”
“뭐! 그 새끼가! 이런 개 썅!”
이정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가 싶더니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곤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계단으로 달려갔다. 일이 잘못 됐어도 크게 잘못 됐음을 직감한 이정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장발사나이, 어떻게 해서든 그 자를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
검찰청은 돌발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급히 병원으로 수송된 범인들은 의식을 잃은 채 위독한 상태였고, 이정수 수사관은 장발사나이의 그림자조차 잡지를 못했다. 그런 가운데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몰려와 한동안 시끄러웠다.
장발사나이가 검찰청까지 찾아와 범인들을 죽이려 했다면 문제는 심각했다. 병원에선 범인들은 아주 강력한 독에 당했다고 밝히고, 무슨 독인지는 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밝히길 독이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진 상태라 살아날 가망성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단지 며칠 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c,tv엔 장발사나이가 지하 주차장을 이용 유유히 3층까지 올라왔다가 사라진 것이 찍혀있었고, 즉시 장발사나이에 대한 수배가 내려졌다. 그리고 그 시간에 면회를 온 우 범식 변호사를 엄중 조사했다. 조사결과 변호사는 가상인물의 청탁을 받고 변호인자격으로 면회를 온 것으로 조사됐다. 가상인물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는 관계로 그 자가 누군지 밝혀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정영란은 회의 중에 민혁에게 받은 정보에 대해선 함구했다. 검찰청까지 찾아와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면 민혁의 정보대로 단순한 납치사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사에 대한 정보가 새나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혹이 생겼고, 사건자체를 은밀히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문책을 면하진 못할 것이었다. 정영란은 자신과 두 수사관에 대한 문책은 일단 감수하기로 했다.
오후 3시 30분 경, 민혁은 동래 대동병원에 와 있었다. 영란에게 김성원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다가 사건 얘길 들었다. 그때 영란은 범인들을 독살하려는 자가 청사까지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했고, 민혁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민혁은 김성원씨를 만나기 위해 회사와 럭키아파트에 갔었다.
그때는 은밀히 잠복중인 수사관들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김성원씨는 만날 수가 없었다.
짐작으론 집에도 회사에도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민혁은 응급실에서 임시중환자실로 이동되는 범인들을 볼 수가 있었다.
주위엔 경찰들이 엄중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독살을 하려고 했단 말이지, 악랄한 놈! 어떻게 해서든 네놈은 꼭 잡고야 말겠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래, 아무래도 마도식에 대해 다시 조사를... 정 검사가 일을 제대로 해냈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했는데 놈이 나타나진 않겠군. 그럼 늦지 않게 광안리나 가자.’
민혁은 범인들의 생명이 위독하지 않다면 입을 막으러 장발사나이가 다시 나타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범인들이 위독한 상태라 그런 일은 없을 것이었다. 정 검사가 독살하려던 자가 장발사나이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던 그 사나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바리코트 사나이가 해운대 살인사건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란 확신까지 갖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네, 내가 할 일은 바로 저런 놈들을 때려잡는 일이다.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죽이는 장발사나이가 무섭게 느껴지는 민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응징을 하겠다고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
“엄마, 나 말이야 병원에서 나가면 안 돼?”
“무슨 소리니 그게...?”
“좀, 짜증나서, 날마다 아픈 사람들만 보니까 정말 속상해 죽겠어, 아까 그 아저씨들도 많이 아픈 것 같던데, 경찰들이 감시는 왜 하지...?”
“소라야,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만 가자.”
“엄마! 눈 올 때 끼게 벙어리장갑 사줘라!”
“별스럽게 벙어리장갑은... 알았다.”
30대 여인이 소녀가 탄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소녀는 열 살쯤 되어 보였고 큰 병을 앓고 있는지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녀의 얼굴은 병원생활을 하는 소녀치고는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어디가 많이 아픈가? 모자를 쓴걸 보면 머리를 빡빡 밀은 것도 같은데, 백혈병, 뭐 그런 병인가...? 귀엽긴 귀엽네.’
민혁은 모녀가 나누는 대화를 다 들었다.
“꼬마야! 씩씩해 보여서 좋다.”
민혁은 그들이 가까이 오자 말을 걸었다.
“내가 남잔가, 씩씩하게...”
“아, 그런가, 그럼 맘씨 착한 예쁜 아가씨네.”
“다들 예쁘다고 그래, 그런데 오빠는 누구야?”
“나, 예쁜 아가씨 친구지...”
민혁은 서슴없이 친구라고 말했다.
“치- 오빠하고 내가 어떻게 친구가 돼, 아야,”
“얘야, 머리가 또 아프니...”
소녀의 엄마가 놀랐는지 정색을 했다.
“내가 잘못한 거니,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괜찮아 오빠, 가끔 머리가 띵띵할 때가 있어,”
“우리 얘가 좀... 많이...”
“그렇군요. 예쁜 아가씨, 어쩌나 오빠가 오늘은 바빠서...”
민혁은 소녀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오빠, 잘 가...”
민혁은 소녀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병원을 나서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본 민혁이었다.
---계속
^(^,
마음이 부자면 부러울 것이 없다.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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