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은 아이들 희망입니다.
여기는 금정산 지하 작은 암동,
자욱한 수증기속에서 뿌글거리는 소리와 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언제 돌아온 것일까,
욕탕에 들어앉은 민혁은 눈을 꾹 내리 감은 채 깊은 명상에 잠겨있었다.
암동에 돌아오자마자 운공에 들어간 민혁은 먼저 양공을 끌어올려 막아 놓았던 왼팔의 혈도를 풀고 양공을 흘려보냈다. 독을 손끝으로 몰아내 태워버리기 위해서였다. 헌데 무엇이 잘못 됐을까, 혈도를 풀자마자 독이 급격히 역류해 온 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기겁한 민혁은 혈도를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그래도 민혁은 양공으로 독을 태워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양공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독이 증폭되듯 그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너무 당황한 민혁은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닌가, 자신이 너무 자만했음을 후회했다. 단번에 놈을 제압했더라면 이런 황당한 일은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죽을 목숨이 살아나진 않을 것이었다. 민혁은 자신도 모르게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갔다. 이젠 독에 중독된 몸으로 조용히 죽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민혁이 이놈!
별안간 할아버지의 호통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은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엄한 말씀이 호통소리처럼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민혁은 정신을 수습하곤 독도 쓰기에 따라 약이 된다는 말을 상기했다.
“그래 독도 쓰기에 따라 약이 된다.”
민혁은 순순히 독을 받아 드리기로 하고 천무법을 일으켜 독이 원활히 퍼지도록 길을 인도했다. 그러자 독이 천무법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민혁은 천무법이 모든 것을 망라하여 응용할 수 있는 최상의 상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천무법에 따라 12주천하니 자연스럽게 독공이 생성되어 중단전에 갈무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쉽게 독공이 생성되어 갈무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내공을 갈무리할 때보다는 그 고통이 덜했지만 당할 만큼의 끔찍한 고통을 당한 결과였다.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독침이 박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천잠사로 짰다는 옷을 뚫고 피부를 상하게 한 것을 보면 놈의 무공이 그만큼 높았다는 얘긴데, 제길 내가 너무 경솔하긴 했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을 때 단번에 제압을 했어야 하는 건데, 어쨌든 지공에 당한 놈도 무시치는 못할 거야, 그런데 김성원씨는 집에 잘 돌아갔을까...? 정 검사한테 이 사실을 빨리 전해야 하는데...”
민혁은 독공을 갈무리한 뒤 사건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꼼꼼히 따져봤다. 백사장에서 사나이를 놓친 뒤 독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운공을 했었다. 한 10분쯤 운공을 했지만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워낙에 강력한 독이다 보니 한 번씩 현기증에 정신이 몽롱했고 왼팔은 완전히 마비가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정신 집중도 되질 않았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탄탄한 피부와 응급조치를 한 덕에 정신을 잃거나 더 이상 나빠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허긴 응급조치를 취한 것이 도움이 되긴 했다. 하지만 정작은 민혁의 신체가 그만큼 단련이 되었기에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민혁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그때 민혁으로선 두렵기도 했었지만, 시간을 더 지체를 했다간 마비된 팔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생각을 했었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민혁은 그 즉시 백사장을 떠났다. 민혁이 암동으로 돌아온 시각이 다음날 새벽 1시경이었으니까 장장 3시간 이상 걸렸다고 봐야했다. 그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이것도 전화위복인가, 놈 때문에 독에 대한 면역력은 물론이고 독공을 활용할 수도 있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된 거겠지, 하여튼 앞으론 각별히 조심을... 헌데 놈이 사용한 독침과 암기도 그렇고 연막탄을 사용한 걸 보면 영화에서 봤던 일본의 닌자가 틀림없어, 그렇다면 할아버지 말씀대로 나라의 안녕을 위협하는 그런 닌자!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민혁은 영화 속 닌자들의 활약상을 그려보며 간첩활동이나 산업스파이로 파견된 자라면 큰일이라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특히 할아버지 말씀처럼 외세가 발호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밖은 오후 7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 시각, 검찰청 정 검사 사무실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됐음에도 영란은 물론 수사관과 직원들은 퇴근도 못하고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검사님! 문책을 당할 때 당하더라도 할 일은 합시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요. 놈들이 죽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얘기고, 김성원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검사님 말입니다. 그 친구한테선 아직 연락이 없습니까? 그 친구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권철권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언성을 높이자 노혁진 수사관이 말을 받아 사건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아직 연락이 없네요. 만날 수는 더더욱 없고요. 그런데 김성원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영란이 피곤해 보이는 눈을 깜박이며 직원을 쳐다봤다.
“목숨엔 지장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문을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요. 이 수사관은 아직도 부장실에 있나요?”
“아마, 데게 당하고 있을 겁니다. 씨바랄, 그게 어디 우리 잘못인가, 안 그렇습니까, 검사님!”
“다 내 잘못이죠.”
“검사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 잘못이 제일 크죠. 씨바랄, 내가 가서...”
권철권이 인상을 써대며 부장실로 달려갈 것처럼 문으로 다가갔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일단 사태를 지켜보며 사건을 다시 정리해 봅시다. 분명 김성원씨와 이 사건은 깊은 연관이 있을 거예요.”
영란이 언성을 높여 제지했다.
충식과 종구는 민혁이 백사장에 와 있을 시각인 저녁 8시경에 사망했다. 그 사건으로 정영란은 물론이고 수사에 참여했던 수사관들이 문책을 당할 처지에 있었다. 지금 이정수 수사관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나서서 사태를 수습 중이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김성원은 병원에 입원 중이다. 다행이 몇 대의 갈비뼈가 부러졌고 타박상을 입은 것 외엔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또한 버스와 승합차에 탔던 사람들도 거의 무사했고, 일부 골절상을 입은 사람들만 병원에서 치료중이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김성원은 말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이 수사관이 사고전말과 하루 동안의 행적에 대해 물었지만 헛수고였다.
따박따박~~따박따박~~
똑똑똑--
다급한 발걸음소리에 이어 노크소리가 났다.
“휴~ 충성!”
“충성! 임 순경이 어쩐 일이에요.”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쉰 여경(女警)이 들어오자마자 거수경례를 했고 영란이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았다.
“검사님! 필요하실 것 같아 파일을 하나 받아 왔어요.”
“파일이요? 무슨...”
여경이 시디를 건넸다.
“지금 게임 사이트에 동영상이 돌고 있어요. 보니까, 몽타주의 인물과 비슷한 자가 한 청년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장발이 몽타주의 인물과 같아서...”
“고마워요. 일단 봅시다.”
“......”
여경의 이름은 임수정, 임시지만 정보과 소속 유해사이트 단속반에 근무 중이었다. 임수정은 유해사이트를 찾던 중 게임 사이트에 나돌고 있는 동영상을 봤다. 그때 청사가 발칵 뒤집어지도록 시끄럽던 독살사건이 떠올랐고 cc,tv와 몽타주의 인물이 동영상의 인물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봤다.
동영상은 결투 장면부터 떴다. 동영상이 뜨자 제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화면을 바라본 사람은 권철권이었다. 영상은 밤이라 흐릿했다. 하지만 가로등불빛에 두 사나이의 결투장면이 제대로 잡혀있었다.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바바리코트를 입은 장발의 사나이와 잠바차림에 모자를 쓴 청년과의 결투는 명장면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동영상에 빠져든 것처럼 거칠어졌다.
영화를 촬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은 정말이지, 몇 차례 공중을 날듯이 도약해선 상대를 공격했고 방어했다. 번쩍이는 것이 날아가는 것도 보였고, 한순간 청년의 날렵한 발차기에 당한 장발사나이가 미끄러지듯 서너 걸음 물러나선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도 찍혔다. 그리고 연막이 터지면서 화면이 흐려졌다가 다시 잡혔고, 그때는 비틀거리며 바다로 걸어가는 청년만 찍혀있었다. 잠깐 화면이 바다를 비췄고, 결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의 놀란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가 꺼졌다. 대략 5분짜리 동영상치고는 걸작이었다.
동영상을 지켜본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정말 있을까,
신기한 것을 봤다는 눈빛들이었다.
그때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던 권철권이 한차례 눈을 비벼대곤 재촉하듯 나섰다.
“다 다시 봅시다.”
“닮긴 닮았지요.”
의혹의 눈빛을 하고 있던 영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정지!”
결투장면이 한창 이루어 질 때 권철권이 소리쳤다.
“알아보겠어요.”
“권 형사! 그 놈인가?”
영란과 노혁진이 나섰다.
“저-저 저 새끼! 분명합니다. 저 새끼가 틀림없습니다.”
권철권은 화면의 장발사나이를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예요. 그런데 잠깐, 이 청년은...?”
영란이 동영상의 민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검사님! 아는 잡니까?”
노혁진이 의혹의 눈으로 영란을 직시했다.
영란은 청년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쳐다봤다.
흐릿하긴 했지만 분명히 본 기억이 났고, 가슴까지 콩콩거릴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영란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들이마시곤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권 수사관, 이 청년 말이에요. 오피스텔에서 봤던 그 청년이지요. 옷을 봐요. 그때도 흰 바지를 입었고 잠바에 모자를 쓰고 있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 청년이 맞는데요. 그렇다면 저 청년이 정보를...”
“그래요. 서면에서 날 구해줬던 그 사람과 비슷해요. 그런데 왜 자신을 숨기는...”
영란은 흥분한 나머지 말끝을 흐렸다.
“그만한 사정이 있겠죠. 아무튼 대단한 청년입니다.”
“......”
사람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한편, 민혁은 암동을 나와 고당봉에 올라와 있었다.
하늘엔 반달이 떠 있었고 수많은 별들이 밀어를 속삭이듯 빤짝였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을 예고하듯 싸늘한 바람이 정상을 휘돌아 지나갔다.
도심은 변함없이 야경으로 현란했다.
“역시 천무법이야, 욕탕은 불가사의하고, 놈이 죽지는 않겠지만 지공에 당했으니 다시 나설 순 없을 테고, 아니지 그 조직이... 그럼 김성원씨 가족이 위험하다. 이 물건은 일단 정 검사한테 전하자. 그리고 김성원씨 가족을 보호하라고 부탁하면, 그래 마 도식도...”
민혁은 가슴을 만져 봉투를 확인하곤 몸을 날렸다.
휙휙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한번 도약에 3미터씩 내달리는 민혁은 한 마리 대호였다. 그러고 보니 몸은 씻은 듯 나은 것 같았다. 아니 한 단계 더 발전했는지, 몸놀림이 전보다도 더 유연했고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일전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고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었다.
사람들 눈을 의식했는지 민혁은 큰길을 피해 온천장 지하철역까지 왔다.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10분경이었다.
땡그랑- 땡그랑-
“검사님, 땡그랑이 뭡니까, 벨소리 좀 바꾸십시오.”
영란의 핸드폰이 울리자 진작부터 말하고 싶었다는 듯 권철권이 나섰다.
“난 구세군 종소리 같아서 좋던데...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영란의 얼굴이 긴장한 것인지 밝아진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변했다.
누구 지...?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정영란을 쳐다봤다.
“여...보...세요?”
영란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답만 하세요.’
“네, 알았어요.”
영란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어 목소리까지 떨려나왔다. 이미 보통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동영상을 보자 더 흥분되었고, 이번엔 어떤 소식을 전해 줄까, 혹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에 마음까지 급해졌다.
‘지금 사무실입니까?’
“네, 지금...요. 네, 네, 그래도 직접 만나서...”
‘내 얘기 명심해서 들으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때는 정 검사님과의 인연은 끝입니다. 그리고...’
무슨 얘기가 들려왔는지 정영란의 얼굴이 별안간 굳어졌다.
“네, 알겠습니다. 네, 조처를 취하겠습니다. 네, 네, 네,”
영란은 공손한 목소리로 연방 네, 네 하고 대답은 잘도 했다.
하지만 얼굴은 잔뜩 굳어진 채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정영란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저 자센지, 잔뜩 의혹의 눈으로 지켜봤다.
전화 통화는 대략 2분쯤 이루어졌고, 상대방에선 할 말만 하곤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영란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무슨 일인가 걱정이었다.
그때 권철권이 어깨를 툭 건드렸다.
“검사님! 정신 차리십시오. 도대체 무슨...”
“내 정신 좀 봐! 저 나갔다 올 때까지 모두 기다려요.”
권철권이 일깨우자 영란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곤 부리나케 사무실을 나갔다.
그 뒤를 권철권이 빠르게 쫓아갔다.
“무슨 일일까요?”
“혹시, 그 청년이 전화를...”
“그 청년이 만나자고 한 모양예요.”
“그렇담 나도 쫓아갈 걸... 아무튼 좋은 소식을 가져와야 할 텐데...”
이정수가 문까지 열어보곤 돌아서며 기대의 눈빛을 했다.
“그럼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겁니다.”
그늘졌던 사람들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계속
^(^,
진실을 알면 말에 우롱당하지 않는다.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며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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