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white tiger)

소설, white tiger 11

듬직한 남자 2011. 10. 2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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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입니다. 

 

패랭이 꽃

 

두 시간 후였다.

민혁이와 할아버지는 바위 앞에 마주 서 있었다.

바위 위엔 백의와 한 켤레의 신발이 놓여있었다.

 

“민혁아! 이 세상에 한 벌뿐인 귀한 옷이다. 천잠사(天蠶絲)로 짠 옷으로서 수화(水火)가 불침(不侵)한다. 네 몸엔 잘 맞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항시 그 옷을 입고 다녀라!”

“예, 할아버지!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동안 민혁은 발가벗고 살았었다.

그런 민혁의 신체적 조건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월등히 좋아져 있었다. 키는 10센티나 더 자라 180센티쯤 되었고 몸의 골격은 튼튼해 졌다. 몸매 역시 골격에 맞게 아주 멋져졌다. 귀를 덮은 더벅머리만 손질한다면 어디를 가든 멋진 청년이란 소리를 듣게 될 것이었다.

 

“할아버지! 이런 일도 다 있습니까? 내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크다니, 정말이지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민혁은 팔을 굽혀 불룩 튀어 올라온 알통도 만져보고 단단하게 근육이 붙은 몸도 새삼스레 쓰다듬어도 봤다. 자신의 몸임에도 신기했고, 모든 것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

 

“민혁아! 옷을 입어 보거라!”

“알았어요. 히야, 놀래 자빠지겠군. 할아버지! 엄마가 절 몰라보는 건 아니겠죠.”

 

민혁은 먼저 여인의 스타킹처럼 수축이 좋은 반바지와 팔 없는 속옷을 입었다. 얼마나 얇고 부드러운지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넓적한 요대(腰帶)가 부착된 일자로 된 바지를 입었다. 요대는 천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부드러웠다. 그리고 웃옷은 개량한복처럼 앞섶을 약간 여미게 되어 있었으나 목깃이 빳빳하게 올라와 있었고 소매도 적당한 넓이였다. 평상시에 입고 다녀도 무난할 듯 보였다. 아니 좀 튀는 패션이긴 했다. 옷을 다 입은 민혁이 신발을 신었다. 신발 역시 천잠사로 만든 신발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농구화와 흡사했다. 옷을 입는 내내 민혁의 눈엔 신기함으로 가득했다.

 

“허허- 과연 큰일을 할 인물이로다. 너를 믿겠다.”

 

민혁을 찬찬히 뜯어본 할아버지가 찬탄해 마지않았다.

백의를 입고 당당하게 서 있는 민혁의 모습은 누가 봐도 반할만한 준수(俊秀)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얼굴만 다르다면 알아볼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민혁은 백일 만에 아주 특별한 청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야, 내 임무를 다한 것 같아 미음이 가볍구나.”

“그런데 할아버지! 제가 민혁이가 맞습니까? 이거 내가 나를 몰라볼 정도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지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민혁은 할아버지 앞에 넓죽 큰절을 올렸다.

 

“이놈아! 우리끼리는 절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그게 법이고 도리지요.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민혁은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허허- 좋다. 좋아, 그런데 민혁아! 노파심에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강조해야겠다.”

“...말씀하세요.”

“일전에도 주지시켰듯이 중국의 무공은 네가 배운 무공과 상통하는 것이 많다. 성취도에 따라 그 우위를 정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닌자술이나 음양술에 대해선 각별히 경계를 해야 할 것이다. 말했듯이 닌자는 암살, 침투, 교란과 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에서 키워진 자들이다. 그들의 수법은 악랄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음양사는 사술을 써서 상대를 미혹에 빠뜨려 제압한다. 네게 심령술을 가르친 것은 음양사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알겠느냐?”

“그런데 할아버지! 닌자라면, 을미사변인 명성황후 시해...”

 

민혁은 문득 떠오른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범인들이 일본의 닌자들이 아니었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을미사변은 1895년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국모인 명성황후 민비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얼마 전 방송에서는 한 프로그램을 통해 을미사변은 일본 낭인출신의 자객들 48명이 그 당시 일본정부의 지시에 따라 저지른 사건이었다고 보도를 했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민혁아! 가슴 아픈 사건이 어디 그 뿐이겠느냐? 오래 전서부터 각 국의 첩자나 닌자들은 이 땅에서 암약해 왔다. 특히 닌자들은 암살뿐만 아니라 정보와 기밀을 캐내는 간첩활동과 노략질을 서슴없이 행해왔다. 시간이 되었다. 그만 가자!”

 

정말 시간이 없었음인가,

할아버지는 성큼 걸음을 떼었다.

 

‘할아버지, 이번에 가시면 영영 못 만나겠지요. 제길, 내가 왜 이러지, 눈물이...’

마지못해 따라가듯 민혁은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민혁이와 할아버지는 암봉 위에 올라와 있었다.

달은 구름에 가려있었고 아름다운 별빛만 쏟아지는 깊은 밤이었다.

 

휘리링- 휘이잉--

 

밤바람이 암봉을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의 백의가 보기 좋게 나부꼈다.

 

‘진정 꿈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예견된 일처럼, 아니 운명처럼 현실로 나타났다. 엄마! 민혁입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죠. 곧 집에 갑니다. 씨- 눈물이...’

민혁은 울컥 눈물이 치솟았으나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할아버지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세상에 나올 일이 없겠구나! 아이가 잘해 줘야 할 텐데, 암, 민혁이는 잘 해낼 것이야!’

하늘을 우러러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한 가닥 아쉬움이 어렸다.

아무래도 헤어지는 게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비록 민혁이의 눈에만 보이는 영(靈)이었지만 나라사랑이 특별했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수백 년 동안 산신으로서, 수호자로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한때는 고난의 연속인 나라 때문에 통탄한 나머지 역사의 흐름을 뒤바꿀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허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일시뿐, 언젠가는 당해야 했던 고난보다도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기에 할아버지는 나서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이 나라 나라사랑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할아버지는 이젠 영영 떠나려하고 있었다.

 

“이것을 받아라!”

“할아버지! 이건...”

 

할아버지는 불쑥 보석이 박힌 검을 내밀었고 민혁이는 길이가 60센티쯤 되는 검을 받아들며 죄송한 마음에 할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보검(寶劍)의 손잡이엔 굵은 보석들이 박혀있었고 보석들은 별빛에도 반짝거렸다. 특히 검은 일종의 연검(軟劒)인데 팔찌처럼 팔목에 찰 수도 있는 보검이었다. 할아버지는 보검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말했었다. 민혁은 할아버지의 처사에 눈물이 나도록 고맙고 감사했다.

 

“이 검은 내 신물이니라. 너를 만난 기념으로 주는 것이니, 사악한 자들과 외세를 물리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해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드릴게 없습니다.”

“나도 선물하나 가져간다.”

“......”

선계에서도 속세의 물건이 소용되는지는 모르겠으나 할아버지는 민혁이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품속에서 꺼내 보였다.

 

“할아버지! 그 시계는 1년마다 약을 넣어줘야 갑니다.”

“괜찮다. 네 물건이니 기념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할아버지도 참...”

 

민혁이 울컥 눈물을 흘렸고, 할아버지는 묵묵히 민혁을 지켜봤다.

그렇게 잠시 민혁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민혁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해야겠다. 속세에 나가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정의롭지 못한 것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서지 말라! 네가 할 일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만인을 위해 공평무사하게 행하라! 이점 각별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할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너를 믿을 것이다.”

“예, 믿으...”

 

슈슈슈-슉---

 

하늘로 치솟듯 날아가는 할아버지를 민혁은 멍하니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이내 근엄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며 들려왔다.

 

“절대 자신을 내보이지 말거라!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 걱정 마시고,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민혁은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푸드득- 끼끼루- 까르르- 꺄르르--

 

금정산 일대가 민혁의 목소리에 놀라 들썩거렸다.

잠에 빠졌던 산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들짐승들도 기성을 질러댔다.

 

할아버지가 바람처럼 사라져간 하늘, 구름에 가렸던 만월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었다.

만월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잠긴 민혁의 두 주먹에 힘이 가해졌다.

 

“나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것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다. 할아버지! 엄마!”

 

민혁은 당당하게 양팔을 하늘로 뻗쳐 올렸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던 암봉에 민혁은 당당히 서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엔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민혁은 마음을 경건히 하곤 암벽 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불가사의한 일이긴 했지만 분명 암벽엔 민혁의 오른손과 똑 같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민혁은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그 순간 주위가 뿌옇게 변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암동 입구에 민혁은 서 있었다. 마치 홀로그램이나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암동, 그윽한 과일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침이 절로 고였다. 백일동안 살았던 암동이라 그런지 암동은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사실 암동은 할아버지 말씀처럼 집 같았다.

 

민혁은 제단으로 향했다.

제단으로 향하면서도 시야를 현혹시키는 별천지를 의심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속을 헤매는 것이라고,

그러나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혁은 급한 마음에 열두 계단을 세 걸음 만에 올라와 제단 앞에 섰다. 너무 황당했을까, 민혁의 눈이 의심으로 가득했다. 분명 족자의 초상화는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초상화의 인물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분명 할아버지의 초상화는 사라지고 거기엔 뜻밖에도 백의를 입은 자신이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너무 기막힌 일이라 민혁은 멍했다.

 

잠시 멍했던 민혁이 정신을 수습했는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진정한 산신령이 맞습니다. 이 나라를 사랑한 천검의 수호자이셨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오늘부터는 제가 천검의 수호잡니다. 저는 민족혼인 천검의 수호자로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민혁은 진정으로 할아버지를 존경했다.

이젠 그 무엇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3장으로 이어집니다.

 

^(^,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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