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욧
2, 축구선수
3, 이근호, 신태요
4, 축구 이야기
5, 결론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축구소년
2017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이근호 선수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에겐 90분 동안 목숨을 바치듯 뛰는 선수를 원한다. 대표팀에 대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보여줄 선수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이근호 같은 선수다.”
덧붙여 이근호처럼 최선을 다해 뛰는 선수가 10명만 있다면 월드컵에 나가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며 그의 후배들이 태극마크의 무게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이근호 인스타그램]
‘2군 선수’였던 이근호는 부평고를 졸업한 후, 2004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선수로서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2군을 전전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온 그는 2006년에 드디어 K리그 2군 리그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2007년에는 대구로 이적하여 골 폭풍을 만들어냈고, 이 여세를 몰아 대표팀에까지 발탁되며 그야말로 ‘2군 신화’를 쓰게 되었죠.
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이근호 선수는 3골을 터트리며 본선행을 대표팀을 본선행으로 이끄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황태자’라 불릴 정도였지만 이후 유럽 진출 실패와 컨디션 난조로 23명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말았죠. 그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전지훈련지 오스트리아까지 동행했지만, 대회 개막을 보름 앞두고 홀로 쓸쓸히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오는 게 창피해 면세점에서 사복을 급히 사서 갈아입은 채 취재진을 피해 공항을 빠져나갔죠.
[출처 : 이근호 인스타그램]
하지만 이후 이근호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2012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AFC 올해의 선수상도 받게 되었죠.
2014년 9월, 군복무를 마친 그는 카타르 프로축구 엘 자이시로 이적한 후 육군 병장 신분으로 받던 월급에 1700배가 넘는 액수를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축구계의 신데렐라’ 스토리같았던 이근호 선수의 이야기... 그는 여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않은 채 꾸준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근호 축구 LGH 아카데미는 올해 5월, 저소득 아동들을 위해 풋살화 102켤레를 대구 수성구청에 전달하기도 했는데요. 대구FC 엔젤클럽 이근호는 지난해 대구 F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수성구에서 축구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이때 축하 화환과 화분이 아닌 기부를 위한 풋살화로 소중한 마음을 대신 받기로 했고, 그의 여러 지인과 팬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이근호 인스타그램]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이번 기부에 함께해 주셨어요. 이번 나눔의 기회를 통해 주변 어려운 이웃과 축구를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그라운드의 노력가 이근호 선수.
최근까지도 자신과 같이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아동, 청소년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근호의 따뜻한 마음이 어린이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라는 따뜻한 진심이 전해졌으리라 느낍니다.
***
乙巳年
모든 가정에 萬福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
열심히 살아온 당신을 응원합니다.
가족과 이웃사랑이 행복입니다.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
'연예와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을 관리하는 것 (0) | 2025.01.03 |
---|---|
하루를 축복 속에서 보내고 싶다면 (1) | 2024.12.31 |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 (2) | 2024.12.31 |
크리스마스 휴전 (2) | 2024.12.27 |
잊고 있던 자동이체는 행복의 결실을 맺는다 (4) | 2024.12.26 |